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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스타프 클림트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 소더비서 3,300억 원 역대급 낙찰

    현대 미술 경매 사상 최고가 경신… 다빈치 ‘살바토르 문디’에 이어 역대 2위 기록(뉴욕=소더비)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걸작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Portrait of Elisabeth Lederer)>이 전 세계 미술 시장을 뒤흔들었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뉴욕 소더비 본사에서 열린 저녁 경매에서 이 작품은 2억 3,640만 달러(한화 약 3,300억 원)에 낙찰되며 현대 미술(Modern Art) 경매 역사를 다시 썼다. 이번 낙찰가는 2022년 앤디 워홀의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약 1억 9,500만 달러)이 세운 기록을 가볍게 뛰어넘은 것으로, 전체 미술품 경매 역사를 통틀어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4억 5,030만 달러)에 이은 역대 2위의 기록이다. 20분의 숨 막히는 경합, 그리고 신기록 소더비의 새로운 본사 브로이어 빌딩(Breuer Building)에서 열린 이번 경매는 시작부터 뜨거웠다. 에스티 로더 가문의 상속자이자 저명한 컬렉터였던 故 레너드 로더(Leonard A. Lauder)의 소장품으로 나온 이 작품은 예상가 1억 5천만 달러를 훌쩍 넘기며 시작되었다. 현장에서는 약 20분간 6명의 입찰자가 치열한 경합을 벌였으며, 가격이 2억 달러를 돌파하는 순간 장내에는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최종 낙찰자는 전화 응찰자로 알려졌으며, 소더비 측은 구체적인 신원을 공개하지 않았다.격동의 역사를 견뎌낸 ‘빈의 모나리자’1914년부터 1916년 사이에 완성된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은 클림트의 ‘황금기’ 스타일과 후기 스타일이 절묘하게 조화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림 속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레더러는 당시 빈의 부유한 산업가 오거스트 레더러의 딸로, 클림트가 가장 아꼈던 후원 가문의 일원이었다. 이 작품은 예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드라마틱한 역사적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1938년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면서 레더러 가문의 컬렉션은 몰수당했으나, 이 작품만큼은 기적적으로 파괴를 면했다. 클림트의 다른 주요 작품들이 1945년 임멘도르프 성 화재로 소실된 것과 달리, 전쟁의 참화를 견뎌내고 원소유주 가문에게 반환된 몇 안 되는 대형 초상화 중 하나다.“돈으로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미술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기록적인 낙찰가가 ‘희소성’에서 기인했다고 분석한다. 헬레나 뉴먼 소더비 유럽 회장은 경매 직후 인터뷰에서 “클림트의 전성기 대형 초상화는 대부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개인이 소장할 수 있는, 시장에 나올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걸작이라는 점이 컬렉터들을 자극했을 것”이라고 평했다.특히 그림 속 엘리자베스가 착용한 우아한 흰색 의상과 배경에 묘사된 동양적인 청색 톤의 조화는 클림트 특유의 장식성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이번 경매 결과로 구스타프 클림트는 명실상부한 ‘가장 비싼 현대 미술가’의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으며, 세계 미술 시장은 2025년 연말을 뜨겁게 달군 ‘클림트 열풍’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인포 · 2025.12.21 50 0 1

  • 트렌드가 아닌 태도로서의 인테리어

    요즘 인테리어를 이야기할 때, 예전처럼 “어떤 스타일이 유행이에요?”라는 질문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대신 이런 질문이 더 자주 등장합니다. “이 공간에서 오래 살아도 괜찮을까요?” “지금의 내 삶에 이 인테리어가 맞을까요?” 2025년을 관통하는 인테리어 트렌드는 바로 이 질문들에서 출발합니다. 트렌드는 더 이상 외부에서 내려오는 규칙이 아니라, 사람의 생활 방식과 감정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끌어올려진 결과가 되었습니다.공간은 이제 ‘보여지는 것’보다 ‘머무르는 것’이 되었다.과거의 인테리어가 사진 속 완성도를 중시했다면, 지금의 인테리어는 체류 시간을 기준으로 평가받습니다. SNS에 올렸을 때 얼마나 반응이 좋은가보다, 하루의 끝에서 그 공간이 나를 얼마나 잘 받아주는지가 중요해졌습니다. 그래서 최근 공간들은 유난히 조용하고, 톤은 낮아졌으며, 대비는 완만해졌습니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웰니스(wellness)가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웰니스는 특정 기능이나 콘셉트가 아닙니다. ‘요가하는 집’, ‘명상하는 집’ 같은 표면적인 설정이 아니라, 공간 전체가 사용자에게 주는 심리적 안전감을 의미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시야에 들어오는 색의 밀도, 바닥을 밟았을 때 느껴지는 감촉, 소리가 울리는 방식까지. 잘 설계된 공간은 사용자가 의식하기도 전에 몸부터 반응합니다. 특히 조명은 그 핵심 요소입니다. 요즘 인테리어에서 조명은 더 이상 단순한 밝기 조절 장치가 아닙니다. 아침에는 자연광에 가까운 색온도로 하루의 리듬을 깨우고, 밤에는 눈과 신경을 자극하지 않는 웜톤으로 서서히 공간을 가라앉힙니다. 이 조명의 흐름이 잘 설계된 공간은, 별다른 연출 없이도 ‘집에 돌아왔다는 느낌’을 줍니다.자연을 닮은 공간, 그러나 자연을 흉내 내지는 않는다.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바이오필릭 디자인(Biophilic Design)은 이제 하나의 트렌드를 넘어 기본 전제가 되었습니다. 다만 중요한 변화는,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시도는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내 정원을 만들거나 식물을 과시적으로 배치하기보다는, 자연이 가진 속성을 공간에 번역하는 방식이 주를 이룹니다.  예를 들어 완전히 균일한 흰 벽보다는, 미세한 입자가 느껴지는 페인트 마감이 선호됩니다. 매끈하게 코팅된 표면보다, 손으로 만졌을 때 온도와 질감이 전해지는 소재들이 선택됩니다. 나무 역시 지나치게 가공된 형태보다는 결이 살아 있고, 약간의 불규칙함이 남아 있는 상태가 더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는 단순한 미적 취향의 변화가 아니라, 자연스러움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에 대한 집단적 학습에 가깝습니다. 컬러는 주인공이 아니라 배경이 된다.2025년 인테리어 컬러 트렌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색은 말하지 않고, 분위기만 남긴다.”강렬한 컬러로 공간의 성격을 규정하던 방식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신 베이지, 샌드, 웜 그레이, 그레이시 그린처럼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색들이 공간의 기본값이 됩니다. 이 색들은 눈에 띄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오래 봐도 피로하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포인트 컬러의 사용 방식입니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제 포인트는 면이 아니라 점이나 리듬으로 등장합니다. 쿠션 하나, 액자 하나, 작은 오브제 하나. 이 작은 색의 변화가 공간 전체의 인상을 좌우합니다. 이는 인테리어가 점점 더 편집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지속 가능성은 윤리가 아니라 ‘안목’이 되었다.친환경, 지속 가능성이라는 단어는 이제 더 이상 특별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것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공간에 녹여내느냐입니다. 요즘 인테리어에서 지속 가능성은 도덕적 선언이 아니라, 공간을 보는 눈의 깊이로 인식됩니다. 오래 쓸 수 있는 디자인인지, 시간이 지나도 촌스러워지지 않는지, 수리하거나 재사용할 여지가 있는지. 이런 질문들이 디자인 선택의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최근 공간에서는 유행을 강하게 타는 가구보다, 형태가 단순하고 비례가 좋은 가구들이 선호됩니다. 한눈에 화려하진 않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물건들입니다.공간은 하나의 역할만 수행하지 않는다.재택근무와 유연한 라이프스타일이 일상이 되면서, 공간의 기능은 빠르게 중첩되고 있습니다. 거실은 휴식 공간이자 업무 공간이고, 식탁은 식사와 작업을 동시에 담당합니다. 그래서 최근 인테리어에서는 벽을 세워 기능을 구분하기보다는, 가구 배치와 조명, 소재의 변화로 공간의 성격을 나눕니다. 이러한 하이브리드 공간에서는 완벽한 분리보다 전환의 부드러움이 중요합니다. 낮에는 집중할 수 있고, 밤에는 긴장이 풀리는 구조. 인테리어는 이제 고정된 사용법을 제시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변주될 수 있는 여지를 남깁니다.기술은 배경으로 물러난다.스마트홈 기술은 이미 충분히 보급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의 관심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자연스럽게 작동하는가’입니다. 버튼과 디스플레이가 눈에 띄는 공간보다는, 기술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조용히 작동하는 공간이 더 높은 완성도를 인정받습니다. 좋은 기술 인테리어란, 사용자가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것입니다. 조명이 자동으로 조절되고, 온도와 습도가 자연스럽게 유지되며, 공간이 사용자보다 먼저 반응하는 상태. 기술은 앞에 나서지 않고, 삶을 방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합니다.결국 인테리어는 ‘삶의 태도’를 드러낸다.2025년의 인테리어 트렌드는 하나의 스타일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대신 분명한 공통점은 있습니다. 더 느리게, 더 솔직하게, 더 오래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 인테리어는 취향을 과시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삶을 선택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좋은 공간일수록 말이 없습니다. 다만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조금 더 편안해지고, 조금 더 자기 자신에 가까워질 뿐입니다. 요즘 인테리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트렌드는,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공간이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공간 안에서 자신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

    인테리어 · 2025.12.21 53 0 1

  • 황금으로 욕망을 그린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 빈의 불안과 관능 사이에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삶을 이야기하려면, 우리는 한 명의 화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19세기 말 빈이라는 도시 전체를 함께 거닐어야 합니다. 황금빛 장식과 퇴폐적 긴장, 귀족의 살롱과 카페, 음악과 철학, 성과 죽음이 동시에 숨 쉬던 도시. 클림트는 그 도시의 가장 민감한 신경 위에 붓을 올려놓았던 사람이었습니다. 1862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변두리였던 바움가르텐에서 구스타프 클림트는 태어납니다. 그의 아버지 에른스트 클림트는 금속 세공사이자 조각가였고, 어머니 안나 핀스터는 오페라 가수를 꿈꾸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술적 재능은 이미 집안의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그 공기는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은 가난했고, 아이들은 일찍부터 생계를 의식해야 했습니다. 이 가난은 클림트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남겼습니다. 하나는 장식과 아름다움에 대한 집요한 갈망, 다른 하나는 귀족적 삶에 대한 미묘한 거리감이었습니다. 클림트는 빈 공예학교(쿤스트게베르베슐레)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길로 들어섭니다.이 시기의 그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황금의 클림트”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습니다.장식적이되 매우 모범적이고, 고전적이며, 심지어는 보수적이기까지 했습니다.동생 에른스트, 친구 프란츠 마치와 함께 ‘클림트 컴퍼니’라 불린 이 젊은 화가 집단은 극장 천장화, 공공 건물 벽화, 귀족 저택의 장식화를 도맡으며 빈에서 빠르게 명성을 쌓아갑니다.이 시기의 클림트는 성공적인 직업 화가였고, 황제 프란츠 요제프로부터 훈장까지 받는, 체제 안의 예술가였습니다.그러나 이 평온한 성공은 오래가지 않습니다.[조각상에 대한 은유]1890년대에 들어서면서 빈 사회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을 해부하고 있었고, 쇤베르크는 음악의 조성을 붕괴시키고 있었으며, 도시 곳곳에서는 기존의 도덕과 미학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불안이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클림트 역시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는 자신을 표현할 수 없다는 감각에 사로잡힙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빈 대학교 대강당을 위한 천장화 의뢰였습니다. 철학, 의학, 법학을 주제로 한 이 연작에서 클림트는 인간 이성의 승리를 찬미하기를 거부합니다. 대신 그는 나체의 인간, 불안에 휩싸인 몸, 삶과 죽음이 뒤엉킨 이미지를 그려 넣습니다. 특히 <의학>과 <철학>은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지식과 과학이 결코 모든 것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외설적이다”, “퇴폐적이다”, “대학의 위엄을 훼손했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언론과 정치권, 학계가 가세해 클림트를 공격합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스캔들이 아니라, 클림트 개인에게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전환점이 됩니다. 그는 국가의 의뢰를 모두 거부하고, 공공미술에서 완전히 손을 뗍니다. 다시 말해, 그는 체제 밖으로 걸어 나옵니다. [베토벤 프리즈]1897년, 클림트는 뜻을 같이한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빈 분리파’를 결성합니다. 그들의 이념은 단순하면서도 도발적이었습니다.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분리파는 과거의 아카데미즘을 거부하고, 회화·조각·건축·공예를 하나의 총체적 예술로 통합하려 했습니다. 클림트는 이 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고, 초대 회장으로서 단순한 화가를 넘어 사상적 상징이 됩니다. 이 시기부터 클림트의 작품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진입합니다. 그는 평면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고, 금박과 장식 문양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인물의 육체를 현실에서 떼어내 상징의 영역으로 밀어 올립니다. 비잔틴 모자이크에서 영감을 받은 황금 배경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현실과 초월의 경계를 흐리는 장치였습니다. 그 속에서 인물은 중력에서 해방된 듯 떠 있고, 시간은 멈춰 있습니다. [유디트]클림트의 여성들은 특히 강렬합니다. 그는 여성을 이상화하면서도 동시에 위협적인 존재로 그립니다. 사랑과 파멸, 쾌락과 죽음을 동시에 품은 존재. <유디트>에서의 여성은 성서 속 영웅이라기보다 관능적인 파괴자에 가깝고, <다나에>는 신화적 서사를 빌려 여성의 성적 쾌락을 숨김없이 드러냅니다. 이러한 표현은 당대 사회에 또 한 번의 충격을 안겼지만, 동시에 많은 후원자들을 끌어당깁니다. 특히 빈의 부유한 유대계 가문 여성들은 클림트의 초상화를 소장하는 것을 일종의 문화적 지위로 여습니다. 클림트의 사생활은 작품만큼이나 자유분방했습니다.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수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었으며, 여러 명의 아이를 두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키스]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극도로 수줍고 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화려한 살롱보다는 아틀리에에서 작업복을 입고 지내기를 좋아했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것조차 꺼렸습니다.말 대신 그림으로 말하는 사람, 그것이 클림트였습니다.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키스>는 이 모든 요소가 응축된 결정체입니다.남녀는 서로를 껴안고 있지만, 그 포옹은 동시에 영원과 소멸의 경계 위에 놓여 있습니다.남성의 옷은 직선적이고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여성의 옷은 유기적이고 원형적인 패턴으로 채워져 성별의 대비를 극적으로 드러냅니다.황금 배경 속에서 이들은 세상과 단절된 채, 오직 감정만이 실재하는 공간에 존재합니다.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복제되고 소비되면서도 힘을 잃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사랑의 이미지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불안정한 황홀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리제르양의 초상]말년의 클림트는 다시 변화합니다.황금빛 장식은 점차 사라지고, 색채는 더욱 자유로워지며, 붓질은 느슨해집니다.이는 그의 제자이자 후계자라 할 수 있는 에곤 실레의 영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클림트는 실레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며, 자신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직감한 듯 새로운 세대에게 길을 열어주었습니다.1918년, 클림트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폐렴에 걸려 세상을 떠납니다.같은 해, 에곤 실레와 오토 바그너도 잇따라 사망하며 빈 모더니즘의 한 시대가 막을 내립니다.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의 혼란 속에서, 클림트의 죽음은 마치 한 시대의 황금빛 장막이 조용히 내려오는 순간처럼 느껴집니다.구스타프 클림트는 단순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화가가 아닙니다.그는 자신의 시대가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욕망했는지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증인이었습니다.그의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여전히 질문을 받습니다.인간의 몸은 어디까지 드러나도 되는가, 아름다움은 도덕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사랑은 구원인가 파멸인가.이 질문들이 여전히 유효한 한, 클림트는 과거의 화가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예술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스토리 · 2025.12.21 46 0 1

  • 뭉크의 '태양': 절규 너머, 삶을 찬미하는 빛의 교향곡

    에드바르트 뭉크, 우리에게는 영원히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절규’의 화가로 기억되는 이름입니다.핏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 귀를 막고 흔들리는 그의 모습은 현대인이 겪는 불안의 아이콘이 되었죠.하지만 만약 뭉크가 평생 어둠 속에만 갇혀 살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진실일 뿐입니다. 오늘 소개할 그의 걸작, <태양(The Sun)>은 절망의 끝에서 그가 길어 올린 가장 눈부신 희망의 증거이자, 어둠을 뚫고 나온 한 인간의 위대한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1908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정신병원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뭉크는 신경쇠약과 알코올 중독, 그리고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던 환각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져 내린 상태였습니다.“내 몸은 썩어가고 있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스스로 병원을 찾게 됩니다. 수 개월간의 치료와 요양. 그 시간은 뭉크에게 단순한 휴식이 아닌, 예술 인생의 2막을 여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술을 끊고 마음의 평화를 되찾은 뭉크는 노르웨이의 작은 해안 마을 ‘크라게뢰(Kragerø)’로 거처를 옮깁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크라게뢰의 바다는 ‘절규’ 속의 그 불길한 피요르드와는 달랐습니다. 매일 아침 수평선 위로 솟아오르는 태양은 날카로운 신경을 긁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만물을 깨우는 위대한 에너지 그 자체였습니다. 뭉크는 이곳에서 자연의 생명력을 찬미하는 ‘비탈리즘(Vitalism)’에 깊이 심취하게 됩니다. 죽음과 질병, 이별만을 그리던 그의 붓끝에서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정점에 있는 작품이 바로 오슬로 대학 강당(Aula)을 장식하고 있는 대작, <태양>입니다. <태양>을 마주하는 순간, 관람객은 마치 거대한 폭발을 목격하는 듯한 충격에 휩싸입니다. 캔버스 정중앙에 위치한 태양은 단순한 원형의 천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빛의 탄환이며, 우주를 향해 포효하는 에너지의 심장입니다. 뭉크는 태양의 빛을 표현하기 위해 튜브에서 물감을 바로 짜낸 듯한 원색의 노랑, 주황, 파랑을 과감하게 사용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그림이 지극히 ‘과학적’이면서도 동시에 ‘종교적’이라는 사실입니다. 태양에서 뻗어 나오는 직선적인 광선들은 마치 물리학 교과서에 나오는 빛의 파장처럼 정확하고 강력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빛이 닿는 바위와 바다는 마치 신의 축복을 받는 제단처럼 성스럽게 느껴집니다. 뭉크에게 태양은 어두운 밤(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물리치는 구원자이자, 과학과 종교를 아우르는 절대적인 진리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이 걸작이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1911년, 오슬로 대학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강당 벽화 공모전이 열렸을 때, 보수적인 비평가들과 교수들은 뭉크의 그림을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뭉크의 거친 붓 터치와 파격적인 색감이 신성한 배움의 전당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이건 미완성이다", "그냥 스케치일 뿐이다"라는 혹평이 쏟아졌습니다. 뭉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 자신의 사활을 걸었습니다. 그는 오직 이 벽화를 위해 무려 수백 점의 스케치와 습작을 그렸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야외 아틀리에에 거대한 가벽을 세워놓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이 태양이 꼭 필요하다네." 결국 기나긴 논쟁 끝에 1916년, 뭉크의 <태양>은 오슬로 대학 강당의 정면 벽에 당당히 걸리게 됩니다.  그림의 구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디테일이 보입니다. 화면 하단에 검고 거친 바위들이 보이시나요? 이것은 뭉크가 머물던 크라게뢰의 해안가 풍경이기도 하지만, 상징적으로는 인간이 겪는 시련과 고난, 그리고 세속의 무거움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 위로 떠오른 태양 빛은 이 모든 어둠을 덮어버리고도 남을 만큼 강력합니다. 빛은 바위 틈새 하나하나를 파고들며, 차가운 돌덩이마저 따뜻하게 데우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그릴 당시 뭉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태양을 보았다. 그러자 현기증이 나고 눈앞이 하얘졌다." 그가 느꼈던 그 강렬한 현기증은 병적인 어지러움이 아니라, 생명의 경이로움 앞에서 느낀 황홀경이었을 것입니다.  <태양>은 뭉크 예술의 완벽한 대칭점입니다. <절규>가 인간 내면으로 침잠하여 고통을 토해낸 것이라면, <태양>은 그 내면을 뚫고 나와 외부 세계, 즉 우주와 자연을 향해 손을 뻗은 결과물입니다. 이제 뭉크를 떠올릴 때, 귀를 막고 비명 지르는 남자만을 기억하지 말아주세요. 그 비명이 멈춘 자리, 고개를 들어 찬란한 빛을 정면으로 응시했던 한 예술가의 눈부신 아침도 함께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뭉크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남기고 싶었던 위로의 메시지일 테니까요.

    스토리 · 2025.12.20 78 0 1

  • 인테리어 액자, 어떻게 걸어야 가장 예쁠까요?

    액자는 단순히 벽에 거는 물건이라기보다, 공간의 분위기를 완성해 주는 마지막 요소에 가깝습니다.같은 그림이라도 어디에, 어떻게 걸느냐에 따라 집의 인상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액자를 설치할 때는 ‘떨어지지 않게 거는 것’보다, 공간에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처음 액자를 걸기 전에는 벽을 한 번만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대부분의 아파트나 주택 내부 벽은 석고보드로 되어 있고, 구조벽이나 외벽은 콘크리트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차이만 알아두셔도 설치 방법을 고르기가 훨씬 쉬워집니다.액자를 거는 높이에 대해 많이들 고민하시는데, 사실 기준은 아주 단순합니다. 서 있을 때 시선이 자연스럽게 닿는 위치, 즉 액자의 중심이 눈높이에 오도록 걸어주면 됩니다. 보통 바닥에서 약 145~150cm 정도가 가장 안정적으로 보입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작품이 편안하게 보이는 이유도 대부분 이 기준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소파나 콘솔, 침대 위에 액자를 거는 경우라면 약간만 다르게 생각하시면 됩니다.가구 바로 위에 너무 붙여 걸면 답답해 보이고, 반대로 너무 띄우면 액자가 떠 있는 느낌이 납니다.가구 상단에서 액자 하단까지 소파의경우 25~30cm, 책상의 경우 30~40cm 정도만 띄워 주면 시각적으로 가장 안정적입니다.*액자의 크기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설치 방법은 액자의 크기와 무게에 따라 달라집니다.작은 액자나 가벼운 액자는 액자걸이나 전용 핀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많습니다.반면 크기가 커지거나 무게가 느껴진다면, 벽체에 맞는 고정 부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특히 석고보드 벽에는 일반 못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보다, 석고보드 전용 앙카나 액자걸이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안전합니다.처음에는 잘 걸린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서 기울어지거나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전세나 임대 공간처럼 벽에 구멍을 내기 어려운 경우라면, 무타공 방식도 좋은 대안이 됩니다.다만 접착식 제품은 벽지 상태와 하중 제한을 꼭 확인하셔야 하고, 대형 액자보다는 중소형 액자에 적합하다는 점을 기억하시면 좋습니다.여러 점의 액자를 함께 걸 계획이라면, 벽에 바로 못을 박기 전에 바닥에서 먼저 배치해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바닥에 놓고 전체 구성을 한 번 보면, 생각보다 간격이 좁거나 균형이 맞지 않는 부분이 눈에 잘 들어옵니다.비슷한 크기의 액자를 나란히 걸 경우에는 간격을 일정하게 맞추는 것이 깔끔하고,크기가 다른 액자를 섞을 때는 전체 외곽이 하나의 형태로 보이도록 구성하면 훨씬 안정적입니다.이때 종이에 액자 크기만큼의 템플릿을 만들어 벽에 임시로 붙여보는 방법도 많은 분들이 만족해하시는 방법입니다.액자를 설치하면서 가장 흔하게 하는 실수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액자를 너무 높게 거는 경우, 벽 재질을 고려하지 않고 설치하는 경우, 그리고 액자 크기에 비해 벽 여백이 너무 부족한 경우입니다. 이런 실수만 피하셔도 공간의 완성도가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액자는 그림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그림이 놓이는 위치와 주변 여백까지 포함해서 하나의 인테리어 요소가 됩니다.조금만 시간을 들여 설치하면, 같은 액자라도 훨씬 더 고급스럽고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인테리어 · 2025.12.20 94 0 1

  • 고흐가 가장 조용하게 건넨 축복

    '꽃 피는 아몬드 나무'에 대하여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떠올리면 우리는 흔히 요란한 색채를 먼저 떠올린다. 노랗게 들끓는 해바라기, 하늘을 휘감는 푸른 소용돌이, 캔버스를 긁어내듯 쌓아 올린 두꺼운 붓질. 그의 그림은 늘 격정적이고, 고통스럽고, 때로는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그런데 고흐의 작품 가운데, 그 모든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진 그림이 하나 있다. 바로 〈아몬드 나무〉다.이 그림 앞에 서면 묘한 감정이 든다. 격렬함 대신 고요함이 있고, 절규 대신 숨을 고르는 여백이 있다. 그래서 이 그림은 ‘고흐답지 않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고흐다운 작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그림은 그의 불행이 아니라, 그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사랑의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병원에 도착한 한 통의 편지1890년 초봄, 고흐는 프랑스 남부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정신적 붕괴를 겪었고, 자신의 상태가 언제 다시 무너질지 알 수 없는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그에게 생계 수단이기 이전에, 스스로를 붙잡아 두는 마지막 끈이었다. 그 무렵, 동생 테오에게서 편지가 도착한다.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이었다. 아이의 이름은 빈센트 빌럼 반 고흐.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사실은 고흐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는 편지에서 기쁨을 숨기지 않았고, 이 아이의 탄생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고흐는 조카를 직접 안아보지도 못했고, 멀리 떨어진 병실에서 소식만 들었을 뿐이었지만, 그 생명의 등장은 그의 내면에 오랜만에 따뜻한 불을 켜주었다.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이 아이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그가 가진 것은 많지 않았다. 명성도, 돈도, 안정된 삶도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그림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작품이 바로 〈아몬드 나무〉다.가장 먼저 피는 꽃을 그리다아몬드 나무는 유럽에서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나무 중 하나다. 겨울의 찬 기운이 완전히 가시기도 전에, 하얀 꽃을 터뜨린다. 그래서 이 나무는 오래전부터 탄생, 희망, 새로운 시작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고흐는 의도적으로 이 나무를 선택했다. 아직 세상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아기에게,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를 선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림 속의 가지는 하늘을 가로질러 뻗어 있고, 꽃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듯 가볍다. 어떤 과장된 연출도 없다. 다만, 피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전부인 꽃들이다. 이 그림에는 땅이 없다. 나무의 뿌리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하늘과 가지, 그리고 꽃만 존재한다. 이는 마치 아직 세상에 발을 딛지 않은 존재, 가능성 그 자체를 그린 것처럼 느껴진다. 태어남이라는 사건이 얼마나 순수하고, 설명이 필요 없는 일인지를 고흐는 이 단순한 구도로 보여준다.일본 판화에서 찾은 평온함〈아몬드 나무〉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이 그림이 고흐가 평생 동경했던 일본 미학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고흐는 일본 판화를 수집했고, 그 단순한 선과 여백,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 깊이 매료되었다. 이 그림에서는 서양 회화 특유의 원근이나 깊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평면적인 하늘 위에 가지가 장식처럼 펼쳐진다. 꽃은 사실적으로 묘사되기보다는 리듬감 있게 배치되어 있고, 하늘은 하나의 배경색처럼 고요하다. 이는 감정을 쏟아붓는 그림이 아니다. 오히려 감정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그린 그림에 가깝다. 고흐는 이 그림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조카를 위해, 그 생명을 위해 한 발 물러선다. 그 점에서 이 작품은 매우 이례적이다.고흐가 남긴 가장 다정한 기록고흐는 생전에 거의 인정받지 못했고, 이 그림 역시 그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림’으로 기억된다. 병원 대기실, 아이 방, 거실 벽에 걸렸을 때 가장 자연스러운 고흐의 그림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그림이 주는 위로는, 고흐가 이 작품에서 자기 자신보다 누군가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늘 자기 내면의 고통을 캔버스에 쏟아냈지만, 이 그림에서는 고통이 아니라 축복을 선택했다.  〈아몬드 나무〉는 고흐가 세상에 남긴 가장 조용한 인사말 같다. “괜찮다. 시작해도 된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그림은 오래 남는다.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스토리 · 2025.12.20 58 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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