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요에 속의 ‘모에’ 요소 찾기: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만화적 기원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작품 세계는 현대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모에’ 요소가 싹튼 비옥한 토양입니다. ‘호쿠사이 만화’에서 보여준 역동적인 선과 생략, 미인화에서 나타난 특정 신체 부위의 강조와 무방비한 매력, 그리고 과감한 데포르메 기법은 시대를 초월하여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시각적 문법을 정립했습니다. 에도 시대의 우키요에는 단순한 고전 미술이 아니라, 현대 서브컬처의 DNA를 품고 있는 살아있는 예술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대 서브컬처 문화, 특히 애니메이션과 만화에서 흔히 사용되는 ‘모에(Moe)’라는 개념은 특정 대상에 대한 강렬한 호감이나 열광적인 애정을 의미합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감정의 시각적, 기호적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 에도 시대의 우키요에 거장,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호쿠사이 만화(北斎漫画)』와 마주하게 됩니다.

호쿠사이는 단순히 풍경만을 그린 화가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남긴 15권 분량의 스케치 모음집인 ‘호쿠사이 만화’는 당시 사람들의 일상, 동식물, 그리고 요괴에 이르기까지 삼라만상을 화폭에 담아냈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바로 대상의 ‘생략’과 ‘강조’라는 만화적 기법입니다.
현대 만화가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여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하듯, 호쿠사이 역시 붓끝 하나로 대상의 본질적인 귀여움이나 우스꽝스러움을 포착해냈습니다.

특히 인물의 표정을 묘사할 때 나타나는 역동적인 선의 흐름은 오늘날의 ‘작화 붕괴’를 연상시킬 만큼 파격적이면서도, 그 안에서 묘한 인간미와 사랑스러움을 자아냅니다.
춤을 추는 사람들의 동작에서 뼈가 없는 듯 유연하게 휘어지는 팔다리나,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과장되게 표현한 눈매는 현대 캐릭터 디자인의 기초 문법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록화를 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대상에게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모에’의 원형적 단계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뻣뻣한 초상화가 아닌, 살아 숨 쉬며 튀어나올 듯한 이 생동감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하여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의 힘이자, 현대 만화 예술이 빚지고 있는 거대한 유산입니다.







우키요에의 대표적 장르인 ‘미인화(Bijin-ga)’를 들여다보면, 현대의 미소녀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모에 포인트’가 이미 정교하게 구축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호쿠사이를 비롯한 당시의 화가들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묘사할 때, 사실적인 비례보다는 특정 부위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가늘고 긴 눈매, 살짝 벌어진 입술, 그리고 무엇보다 의도적으로 강조된 목덜미의 곡선과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한 올의 디테일은 감상자의 보호본능이나 동경심을 자극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는 현대 캐릭터 디자인에서 눈의 크기를 키우거나 특정 신체적 특징을 부각해 매력을 발산하는 방식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우키요에 속 여인들이 취하고 있는 자세를 살펴보면 일상 속의 무방비한 순간—예를 들어 거울을 보며 단장하거나, 모기장을 걷어 올리는 모습 등—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완벽하게 연출된 모습보다는 약간의 빈틈(Gap)을 보여줌으로써 친근감과 애착을 형성하는 현대의 ‘갭 모에(Gap Moe)’ 전략과 유사한 맥락을 지닙니다.
호쿠사이의 붓터치는 옷 주름의 흐름을 통해 신체의 부드러움을 암시하고, 화려한 기모노 패턴 속에서도 인물의 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탁월한 균형 감각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시각적 장치들은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그림 속 인물과 감상자 사이에 은밀하고도 정서적인 교감을 만들어냅니다.
200년 전의 대중들이 이 그림들을 보며 느꼈을 설렘은, 오늘날 우리가 스크린 속 캐릭터를 보며 느끼는 감정과 결코 다르지 않은 ‘인류 보편의 미적 본능’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호쿠사이 작품 전반에 흐르는 ‘데포르메(Deformer)’의 미학입니다. 

데포르메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변형, 축소, 왜곡하여 표현하는 기법으로, 현대의 SD(Super Deformed) 캐릭터나 ‘치비(Chibi)’ 스타일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호쿠사이는 신화 속 영웅이나 근엄한 승려조차도 때로는 2등신의 비율로,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그려내며 권위를 해체하고 친근함을 부여했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 둥글둥글한 얼굴에 점 하나로 눈을 표현한 캐릭터들은 보는 순간 무장해제를 시키는 귀여움을 발산합니다. 

이러한 과장과 생략은 단순히 웃음을 유발하는 것을 넘어, 캐릭터의 성격을 단번에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효율적인 시각 언어입니다.


호쿠사이는 복잡한 서사 없이도 그림 한 장만으로 상황의 아이러니와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 탁월했습니다. 

뺨을 부풀리거나 눈을 찡그리는 등의 과장된 표정 연출은 오늘날 이모티콘이나 만화적 기호(땀방울, 핏줄 마크 등)의 선구적인 형태라 볼 수 있습니다. 

예술이 고상한 갤러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손바닥 위에서 낄낄거리며 즐기는 유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그의 시도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팝 아트’이자 ‘모에 문화’의 시작점이었습니다.


공간을 채우는 예술품을 고를 때, 때로는 이처럼 위트 있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데포르메 요소를 찾아보는 것도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는 훌륭한 큐레이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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