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아트 바젤 홍콩 : 아시아의 시선으로 그려낸 미학의 지도

빅토리아 하버의 물결 위로 떠오르는 예술의 봄
습윤한 공기 사이로 묘한 설렘이 번지는 계절, 홍콩의 3월은 언제나 예술을 탐미하는 이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합니다. 

빅토리아 하버의 짙은 밤바다 위로 도시의 네온사인이 유화 물감처럼 번질 때, 우리는 비로소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이라는 거대한 미학의 축제가 시작되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2026년, 올해의 아트 바젤은 그 어느 때보다 '아시아'라는 정체성에 깊이 천착한 모습으로 우리 곁을 찾아왔습니다.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나, 그리고 재도약의 과도기를 거쳐 이제는 완연한 성숙기에 접어든 이 거대한 페어는 단순한 미술 장터를 넘어 아시아 예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거대한 담론의 장으로 변모했습니다. 

올해 발표된 참가 갤러리 리스트를 훑어보는 일은 마치 밤하늘의 성좌를 읽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모여든 240여 개의 갤러리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빛깔과 철학을 품고 홍콩 컨벤션 센터(HKCEC)를 가득 채울 준비를 마쳤습니다. 

특히 이번 2026년 에디션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예술적 유산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들이 그 어느 때보다 과감하고 섬세하게 배치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다 건너 불어오는 바람에 섞인 예술의 향기를 맡으며, 우리는 이제 그들이 펼쳐놓은 미지의 세계로 걸어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갤러리즈(Galleries): 거장들의 귀환과 견고한 취향의 세계 

메인 섹터인 '갤러리즈(Galleries)'는 아트 바젤 홍콩의 심장이자 척추와도 같습니다. 
가고시안(Gagosian),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 데이비드 즈워너(David Zwirner)와 같은 서구의 메가 갤러리들이 홍콩으로 귀환하여 보여주는 라인업은 여전히 압도적인 무게감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유명 작가의 작품을 나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아시아 컬렉터들의 높아진 안목과 심미안을 고려한 큐레이션이 돋보입니다. 
서구 거장들의 추상표현주의 대작부터 동시대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개념 미술까지, 부스 하나하나가 마치 독립된 미술관처럼 견고한 서사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공간의 밀도를 높이는 연출이 눈에 띕니다. 
화이트 큐브의 차가움을 덜어내고, 작품이 가진 고유한 물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명과 가벽의 배치를 통해 관람객이 작품과 1:1로 대면하는 듯한 내밀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갤러리스트들의 태도 또한 한층 여유롭고 깊어졌습니다. 
단순히 판매를 위한 설명보다는, 작품이 탄생한 배경과 작가의 철학을 공유하며 컬렉터와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려는 모습에서 진정한 예술 후원의 가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인사이트(Insights): 아시아 미술사의 잊혀진 조각을 찾아서 

이번 2026 아트 바젤 홍콩의 백미는 단연 '인사이트(Insights)' 섹터입니다. 
주최 측이 "아시아 신진 작가들과 역사적 맥락을 대폭 강화했다"고 공언한 만큼, 이 섹션은 단순한 신인 소개를 넘어 아시아 미술사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내는 고고학적 발굴 현장과도 같습니다. 

190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및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기반을 둔 작가들의 프로젝트를 엄선하여 소개하는 이곳에서는 서구 중심의 미술사에서 소외되었거나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아시아의 모더니즘을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한국, 일본, 대만의 전후 추상 미술부터 동남아시아의 격동적인 정치 상황을 예술로 승화시킨 퍼포먼스 기록물들까지, 인사이트 섹터는 아시아라는 거대한 대륙이 겪어온 역사적 트라우마와 치유의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입니다. 

특히 올해는 여성 작가들의 재발견이 두드러집니다.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아시아 여성 작가들의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작품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이 섹터를 거닐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미술사가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깨닫게 됨과 동시에,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뜨거운 감동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컬렉팅은 유행을 쫓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묻혀 있던 보석 같은 서사를 발굴하여 나의 공간으로 초대하는 행위입니다. 
인사이트 섹터는 바로 그 보물 지도를 제공합니다."


이곳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화려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흙냄새가 나거나, 오래된 종이의 향기가 배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투박함 속에 깃든 시대정신(Zeitgeist)을 읽어내는 것이야말로 아트 바젤 홍콩이 제안하는 2026년의 새로운 관전 포인트입니다. 
큐레이터들이 심혈을 기울여 배치한 동선은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과거와 현재를 오가게 만들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아시아 미술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단단한지를 증명해 보입니다.


한국 갤러리의 약진: 단색화를 넘어선 다채로운 스펙트럼 

자랑스러운 한국 갤러리들의 활약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관람 포인트입니다. 
국제갤러리, PKM 갤러리, 현대화랑, 조현화랑 등 한국 미술계를 이끌어온 터줏대감들은 이제 홍콩에서도 '믿고 보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과거 단색화 열풍이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면, 2026년의 한국 갤러리들은 그보다 훨씬 넓고 깊어진 스펙트럼을 과시합니다. 

물성 그 자체에 집중했던 단색화 거장들의 작품은 여전히 숭고한 아우라를 뿜어내며 부스의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하종현, 박서보, 정상화 화백의 작품 앞에서 세계 각국의 컬렉터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명상에 잠기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고무적인 것은 그 뒤를 잇는 허리 세대 작가들과 신진 작가들의 약진입니다. 

디지털 매체와 설치, 조각을 넘나들며 한국적 미감을 현대적 언어로 번안해내는 이들의 작품은 세련되면서도 깊이가 있습니다. 
특히 한국 특유의 '여백의 미'를 현대적인 공간 설치로 재해석한 부스들은 복잡한 페어장 안에서 숨 쉴 틈을 제공하며 관람객들에게 쉼과 사유의 시간을 선물합니다. 한국 갤러리들의 부스는 이제 단순히 작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한국의 정서와 철학을 전파하는 문화 외교의 현장입니다.




인카운터스(Encounters)와 디스커버리스(Discoveries): 공간을 압도하는 상상력

페어장을 거닐다 보면 거대한 스케일로 시선을 강탈하는 대형 설치 작품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인카운터스(Encounters)' 섹터입니다. 
올해는 특히 '공간과의 대화'를 주제로, 관람객이 작품 내부로 직접 걸어 들어가거나 작품의 일부가 되는 참여형 설치 미술이 주를 이룹니다.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직물 조각이 공기의 흐름에 따라 춤을 추거나, 수백 개의 거울이 반사하며 만들어내는 무한한 공간은 우리에게 익숙한 시공간의 감각을 기분 좋게 배반합니다. 
이 거대한 작품들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쇼핑몰처럼 규격화된 컨벤션 센터라는 공간을 전혀 다른 차원의 예술적 공간으로 탈바꿈시킵니다. 

한편, '디스커버리스(Discoveries)' 섹터는 내일의 스타를 미리 점쳐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장소입니다. 
신진 작가들의 솔로 쇼로 구성된 이 섹터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같은 에너지가 넘쳐흐릅니다. 
기성 문법을 파괴하는 과감한 시도, 기술과 예술을 결합한 실험적인 미디어 아트 등은 예술의 미래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가늠케 합니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는 것이 안정적인 투자라면, 디스커버리스 섹터에서 무명 작가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들의 첫 번째 후원자가 되는 것은 컬렉터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낭만이자 모험일 것입니다.





예술 여행자를 위한 따스한 조언 

아트 바젤 홍콩을 완벽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페어장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여유도 필요합니다. 
홍콩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으로 변모하는 '아트 위크'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페어 관람으로 다리가 뻐근해질 때쯤, 서구룡 문화지구(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로 향해보시길 권합니다. 

아시아 최초의 동시대 시각문화 박물관인 'M+'는 그 외관만으로도 압도적이지만, 내부에서 열리는 특별전은 아트 바젤과는 또 다른 깊이 있는 큐레이팅을 보여줍니다. M+의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홍콩의 스카이라인은 그 어떤 명화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할 것입니다. 

또한, 갤러리들이 밀집한 센트럴의 H 퀸즈(H Queen's)나 페더 빌딩(Pedder Building)을 방문하여 갤러리 나이트를 즐기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관람 후에는 완차이(Wan Chai)의 골목에 숨겨진 노포에서 뜨끈한 완탕면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거나, 소호의 분위기 좋은 와인 바에서 그날 본 작품에 대해 밤새 이야기꽃을 피워보세요. 
예술은 캔버스 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맛있는 음식, 그리고 도시의 공기 속에 살아 숨 쉬는 것이니까요. 

2026 아트 바젤 홍콩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삶에 예술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수많은 작품 속에서 당신의 마음을 흔드는 단 하나의 이미지를 만나는 기적.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 우리는 기꺼이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부디 그곳에서, 당신만의 예술적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홍콩 아트바젤 행사기간 March 27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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