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모네의 대담한 사기극: 생 라자르 역 점령 사건

 1877년 1월, 파리의 거대한 심장부라 불리던 '생 라자르 기차역(Gare Saint-Lazare)'에 한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증기 기관차가 내뿜는 매캐한 연기와 석탄 가루, 바쁘게 오가는 여행객들의 소음으로 가득 찬 이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의 신사였습니다. 

 그는 최고급 양복을 빼입고, 소매 끝에는 값비싼 레이스를 달았으며, 손에는 금장 장식이 번쩍이는 지팡이를 쥐고 있었습니다. 
마치 영국의 귀족이나 대부호처럼 보이는 이 남자는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역장실(Director of Western Railways)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 남자의 정체는 바로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는 땡전 한 푼 없는 가난한 예술가에 불과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우아한 '허세'로 거대한 기차역을 자신의 개인 화실로 만들어버리는 전무후무한 사건을 일으킵니다. 




 1. "북역과 당신네 역을 두고 고민 중이오" 

 모네의 동료였던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의 아들, 장 르누아르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이날의 풍경은 마치 한 편의 코미디 영화 같았습니다. 

 역장을 마주한 모네는 거만한 태도로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화가 클로드 모네라고 하오." 당시 모네는 대중적인 명성을 얻기 전이었지만, 마치 모두가 자신을 알아봐야 한다는 듯 당당했죠. 

 "내가 이번에 기차역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소. 솔직히 말해 북역(Gare du Nord)과 당신네 생 라자르 역을 두고 고민 중인데, 아무래도 이쪽이 더 '성격(character)'이 있어 보이더군. 그래서 당신네 역을 그리기로 결정했소." 
 
이 말은 완벽한 허세였습니다. 
사실 모네는 북역을 그릴 생각 따위는 없었고, 그저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가까운 생 라자르 역이 필요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에 눌린 역장은 이 '위대한 화가'의 선택을 영광으로 여기며 즉시 고개를 숙였습니다. 
역장은 모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라며 직원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2. 기차를 멈추고 증기를 뿜어라! 

 이날부터 생 라자르 역의 플랫폼은 모네의 지휘 아래 돌아가는 거대한 연극 무대가 되었습니다. 모네의 요구는 기상천외했습니다. 

 "지금 빛이 좋지 않으니 루앙행 기차의 출발을 30분 늦추시오!" 
"저 기관차는 연기가 너무 부족하군. 석탄을 더 넣어서 증기를 팍팍 뿜어내게 하시오!"

놀랍게도 역무원들은 이 지시를 충실히 따랐습니다. 
정시 출발이 생명인 기차들이 모네의 붓질 속도에 맞춰 대기했고, 기관사들은 화가가 원하는 '대기(atmosphere)'를 만들기 위해 멀쩡한 기차를 세워두고 석탄을 아낌없이 태워 증기를 만들어냈습니다. 

 플랫폼에 캔버스를 펼친 모네는 마치 전장의 장군처럼 연기와 빛을 지휘했습니다. 
승객들은 영문도 모른 채 매캐한 연기 속에 갇혀야 했지만, 모네에게 그것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빛을 머금은 보랏빛 공기'였습니다. 

 

3. 화려한 양복 뒤에 숨겨진 빈털터리의 비애 

 그런데 이토록 위풍당당했던 모네의 현실은 어땠을까요? 
사실 1877년 당시 모네의 경제적 상황은 최악이었습니다. 
그는 파리의 비싼 물가를 감당하지 못해 허덕였고, 동료 화가 귀스타브 카이유보트(Gustave Caillebotte)가 집세를 대신 내주지 않았다면 거리로 나앉았을지도 모를 처지였습니다. 

 역장을 찾아갈 때 입었던 그 화려한 양복과 금장 지팡이는,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감추기 위한 철저한 위장술이자 '전투복'이었던 셈입니다. 
그는 세상이 가난한 무명 화가보다, 까다롭고 오만한 천재에게 더 관대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절박함 속에서도 모네는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집요하게 매달렸습니다. 
그는 자연의 풍경이 아닌, 현대 문명의 상징인 '기차역'을 통해 변해가는 시대의 공기를 포착하고자 했습니다. 
강철과 유리로 된 지붕, 굉음을 내는 기계 덩어리들이 만들어내는 현대의 신화가 그의 캔버스 위에서 탄생하고 있었습니다. 




 4. 12점의 연작, 인상주의의 정점을 찍다 

 모네는 이 혼란스럽고 매혹적인 역에서 총 12점의 '생 라자르 역' 연작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1877년 제3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되어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그림 속 기차역은 더 이상 차가운 철제 구조물이 아니었습니다. 
유리 천장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증기와 만나 신비로운 푸른색과 분홍색으로 산란했고, 육중한 기관차는 마치 살아있는 괴수처럼 역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냈습니다. 비평가들은 "이제 화가들은 숲과 강이 아니라 기차역에서 시(詩)를 발견해야 한다"며 모네의 혁신적인 시선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나는 기차 그 자체가 아니라, 기차를 감싸고 있는 대기를 그리고 싶었다." 

 모네의 이 말처럼, 그는 눈에 보이는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을 둘러싼 '순간의 빛'을 그렸습니다. 
역장을 속이고 기차를 멈춰 세우면서까지 그가 얻고자 했던 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찰나에 사라지는 빛의 마법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오르세 미술관이나 시카고 미술관에서 마주하는 <생 라자르 역> 그림들은, 가난했지만 자존심만큼은 누구보다 높았던 한 예술가의 '유쾌한 사기극'과 '치열한 예술혼'이 빚어낸 결과물입니다. 
가장 비싼 옷을 입고 가장 더러운 연기 속으로 걸어 들어갔던 모네. 
그의 무모한 열정이 없었다면, 우리는 19세기 파리의 가장 현대적인 순간을 이토록 아름답게 기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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