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정글의 숨결: 뱅크시의 '런던 동물원'

회색빛 도시에 찾아온 야생의 손님들 

2024년 8월, 런던의 뜨거운 여름 공기 사이로 기묘한 침묵과 환호가 교차했습니다.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Banksy)가 예고도 없이 런던 시내 곳곳에 동물들을 풀어놓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침 인스타그램을 통해 하나씩 공개된 이 실루엣들은 삭막한 콘크리트 벽을 거대한 캔버스로, 아니 거대한 '동물원'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는 총 9일 동안 9점의 작품을 연달아 공개하며 도시 전체를 무대로 한 거대한 퍼포먼스로 완성되었습니다. 
큐 브리지(Kew Bridge)의 벼랑 끝에 선 염소부터 런던 동물원 입구의 고릴라까지, 뱅크시가 남긴 이 '도시의 동물들'은 단순한 그래피티를 넘어 도시 생태학과 예술의 공존에 대한 깊은 사색을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불안과 연결: 염소와 코끼리의 대화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것은 8월 5일 공개된 '염소'였습니다. 
리치먼드 큐 브리지 인근 건물 외벽, 좁은 난간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산양의 모습은 마치 벼랑 끝에 몰린 현대인의 초상처럼 보이기도 했고, 인간이 만든 구조물 위에서 갈 곳을 잃은 자연의 단면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옆을 비추는 CCTV 카메라였습니다. 
감시당하는 야생, 혹은 보호받지 못하고 관찰의 대상이 된 생명체에 대한 은유였을까요? 

 이튿날 첼시(Chelsea)의 막힌 창문에는 두 마리의 코끼리가 등장했습니다. 
서로 다른 창문에서 긴 코를 뻗어 닿을 듯 말 듯 한 포즈를 취한 이 작품은 단절된 도시 속에서의 '연결'을 갈망하는 몸짓으로 읽혔습니다. 
꽉 막힌 벽을 뚫고 소통하려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웃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도시의 고독을 마주하게 됩니다. 







사라짐의 미학: 늑대와 원숭이의 운명 

뱅크시의 이번 연작은 예술 작품이 도시라는 정글에서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펙함(Peckham)의 위성 안테나 접시에 그려진 '울부짖는 늑대'는 공개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복면을 쓴 남성들에 의해 도난당했습니다. 
밤하늘의 달을 향해 울부짖는 듯한 늑대의 형상은 위성 접시라는 오브제와 완벽하게 결합해 '도시 생태학적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었지만, 그 사라짐조차도 뱅크시가 의도한 퍼포먼스의 일부처럼 느껴졌습니다. 





 브릭 레인(Brick Lane)의 철교 위에 나타난 세 마리의 원숭이들은 마치 정글의 나무를 타듯 도시의 구조물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 역동적인 움직임은 멈춰 있는 건축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도시가 인간만의 공간이 아님을 웅변하는 듯했습니다. 


유머와 풍자: 펠리컨, 피라냐, 그리고 코뿔소 

시리즈의 중반부는 뱅크시 특유의 위트가 빛났습니다. 
월섬스토(Walthamstow)의 한 생선 가게 간판 위에는 물고기를 낚아채는 펠리컨들이 등장했습니다. 
기존의 간판 속 물고기 그림을 그대로 활용하여, 마치 펠리컨이 간판의 생선을 훔쳐 먹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 이 작품은 '장소 특정적 예술(Site-specific Art)'의 묘미를 보여줍니다. 




 특히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의 경찰 초소(Police box)는 거대한 수족관으로 변신했습니다. 
유리창 안쪽을 유영하는 피라냐 떼의 그림은, 시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 초소를 관상용 어항으로 전락시키며 권위의 무게를 가볍게 비틀었습니다. 



찰턴(Charlton)에서는 버려진 닛산 마이크라 차량 위로 올라타는 코뿔소가 그려졌는데, 차량 앞의 라바콘을 코뿔소의 뿔로 보이게 배치한 재치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게 했습니다. 





대단원: 탈출과 해방의 서사 

9일간의 여정은 8월 13일, 런던 동물원(London Zoo) 정문의 셔터에서 그 정점을 찍었습니다. 
셔터를 들어 올리며 다른 동물들을 탈출시키는 고릴라의 모습, 그리고 그 틈으로 빠져나가는 물개와 새들의 형상은 앞서 8일 동안 런던 시내에 나타난 동물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설명해 주는 완벽한 서사의 종결이었습니다. 

 결국 뱅크시가 만든 이 '도시 동물원'은 갇힌 자들의 탈출기였을까요? 아니면 회색빛 도시에 갇혀 사는 우리 인간들에게 야생의 해방감을 선물하려는 의도였을까요? 이 고릴라 벽화는 공개 직후 런던 동물원 측에 의해 '보존'을 목적으로 철거 및 보관되었지만, 그 메시지는 여전히 도시에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도시 생태학적 미학: 잿빛 캔버스에 피어난 야생 

뱅크시의 이번 연작은 '도시 생태학(Urban Ecology)'이라는 관점에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는 캔버스를 새로 준비하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도시의 흉터나 구조물을 그대로 활용했습니다. 
벗겨진 페인트 자국, 위성 안테나, CCTV, 폐차 직전의 자동차 등은 그 자체로 동물의 서식지가 되었습니다. 

 이는 도시가 인간만의 점유물이 아니라, 자연과 인공이 기묘하게 얽혀 있는 생태계임을 시각적으로 증명합니다. 
또한, 도난당하고(늑대), 철거되고(고양이), 훼손되는(코끼리, 코뿔소) 과정 자체가 현대 도시에서 '야생'이 처한 위태로운 현실을 반영하는 리얼리즘 예술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그림을 통해 콘크리트 틈새에서 숨 쉬는 생명의 역동성을 목격했습니다. 

 예술은 박물관의 유리관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걷는 출근길, 낡은 담벼락, 그리고 무심코 지나친 표지판 속에 야생의 숨결이 숨어 있을지 모릅니다.
뱅크시의 동물들은 이제 대부분 사라지거나 옮겨졌지만, 그들이 머물다 간 자리는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삭막한 일상 속에서 당신은 어떤 '야생'을 꿈꾸고 있나요? 때로는 정해진 궤도를 이탈해 자유롭게 유영하는 피라냐처럼, 셔터를 들어 올리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고릴라처럼, 우리 내면의 야성을 일깨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 당신이 걷는 거리의 풍경을 조금 더 유심히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익숙한 풍경 어딘가에, 당신을 위한 작은 해방구가 그려져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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