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록 5천만 달러 대작이 비공개 경매에서 외면받은 까닭

한 점의 그림에 5천만 달러라는 가격표가 붙는 일은 미술시장에서도 흔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정도 무게를 지닌 잭슨 폴록의 작품이 최근 소더비의 비공개 경매에 나왔다가 결국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채 거두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작품을 내놓은 사람이 미국 화랑계의 거물 아네 글림처라는 점에서 이 일은 단순한 한 건의 유찰 이상의 무게로 읽힙니다.

겉으로 보면 추상표현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폴록, 그것도 최고 수준의 안목을 지닌 컬렉터가 내놓은 물건이라면 거래가 성사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시장은 이름값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번 일은 지금 미술시장의 상단부, 이른바 블루칩 시장이 어떤 분위기에 놓여 있는지를 가늠하게 해 주는 하나의 신호처럼 다가옵니다.



비공개 경매라는 무대


먼저 비공개 경매가 어떤 자리인지 짚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경매는 패들이 오가고 호가가 실시간으로 치솟는 공개 이브닝 세일입니다. 반면 프라이빗 세일은 경매사가 특정 작품을 소수의 잠재 구매자에게 조용히 제안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가격이 공개되지 않고, 유찰되어도 시장에 흔적이 거의 남지 않는다는 점이 큰 장점입니다.

그래서 출품자들은 공개 경매장에서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을 때, 혹은 가격을 외부에 노출하고 싶지 않을 때 이 통로를 택합니다. 작품의 '신선도'를 지키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한 번 경매에서 안 팔린 작품은 시장에서 가치가 의심받는 이른바 번트 상태가 되기 쉬운데, 비공개 채널은 그런 위험을 어느 정도 막아 줍니다. 그런 안전장치를 거쳐 내놓은 작품마저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이름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시장


아네 글림처는 페이스 갤러리를 세운 인물로,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현대미술의 거래와 평가 기준을 만들어 온 사람입니다. 그가 소장품을 시장에 내놓을 때는 단순히 돈이 필요해서라기보다, 작품의 값어치에 대한 확신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그가 책정한 가격대와 실제 구매자가 지불할 의사가 있는 금액 사이에 간극이 있었다는 점이 이번 결과의 핵심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최상단 미술시장은 분명히 신중해졌습니다. 금리 환경의 변화, 세계 곳곳의 정치적 불확실성, 한때 시장을 달구던 컬렉터층의 관망세가 겹치면서, 수천만 달러대 작품을 망설임 없이 사들이던 분위기는 한풀 꺾였습니다. 구매자들은 같은 거장의 작품이라도 보존 상태와 출처, 전시 이력 같은 조건을 훨씬 까다롭게 따집니다. 폴록이라는 이름이 곧 5천만 달러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한 점의 유찰을 두고 시장 전체가 얼어붙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비공개 거래는 시점과 협상 조건에 따라 며칠 만에 결론이 뒤집히기도 합니다. 다만 이 사례가 던지는 질문은 분명합니다. 거장의 명성과 천문학적 가격이 더 이상 자동으로 맞물리지 않는 시대에, 작품의 진짜 시장가는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미술관 쪽의 또 다른 움직임


같은 시기 미술계에서는 인사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필리프 베르뉴가 마이애미의 배스 미술관을 이끌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베르뉴는 미국과 유럽의 주요 기관을 거치며 동시대 미술을 다뤄 온 큐레이터이자 미술관 운영자로, 그의 합류는 배스 미술관이 어떤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꾸려 갈지 가늠하게 합니다. 시장의 거래 동향과 미술관의 리더십 교체는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누가 무엇을 보여 주고 어떤 작가를 조명하느냐는 결국 작품의 가치 평가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한국 컬렉터에게 주는 시사점


이런 흐름은 바다 건너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국내에서도 프리즈 서울을 계기로 해외 블루칩 작품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고, 적지 않은 한국 컬렉터들이 추상표현주의를 비롯한 서구 거장의 작품에 눈을 돌려 왔습니다. 동시에 국내 경매시장 역시 호황기를 지나 옥석을 가리는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비싸다고 무조건 사들이던 시기가 지나고, 작품의 상태와 출처를 꼼꼼히 따지는 분위기가 자리를 잡아 가고 있습니다. 글림처의 폴록이 보여 준 것은, 명성이 아니라 설득력 있는 조건과 합리적인 가격이 거래를 성사시킨다는 사실입니다. 해외 작품 매입을 고민하는 국내 수집가라면 새겨 둘 만한 대목입니다.

한 작품의 유찰이 미술시장의 종말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시장이 좀 더 정직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부르는 값과 치르는 값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는 과정에서, 거장의 작품이라도 제값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글림처의 폴록이 다음에 어떤 자리에서 어떤 가격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지, 그리고 그때 시장이 어떤 답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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