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비율 그대로 주문제작

생생한 입체감 3D 프린트

한국작가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Les Demoiselles d Avignon


미디어 선택 ?

미디어는 그림 원본데이터를 프린트 하는 매체(용지)를 뜻합니다.
현재 아트앤샵에서는 파인아트캔버스 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파인아트는 프린트 매체 중 가장 높은 품질의 미디어 중 하나로 색재현 및 디테일이 좋아 작품 등급의 프린팅에 주로 사용됩니다.
파인아트 미디어의 발색과 디테일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도록 프레임에 따라 그림 표면을 무광코팅/아크릴/아크릴압착의 방법으로 마감합니다.

매트캔버스 는 면직물 소재의 고품질 미디어로 발색이 좋고 직물소재 고유의 패턴감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전면 아크릴이 없으며, 빛 반사가 없는 매트 캔버스를 사용하여 빛반사가 싫으시거나 캔버스 고유의 따듯한 느낌을 원하시는 경우 선택하시면 좋습니다.

아트포스터 해외 직수입 포스터로 그림에 따라 글로시, 매트 등 소재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이즈 선택 * 캔버스/래핑캔버스는 짧은변 최대 140cm


프레임 선택 * 위아래로 스크롤 하면 다양한 프레임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림 후처리 선택 *선택시 1~2일 출고기한이 지연됩니다.


매트(여백) 선택* 선택 가능한 경우에만 표시됩니다.


프린트 여백* 여백을 늘리면 그림크기가 작아집니다.


주문정보

전면보호

-

프레임 두께

-

액자크기

-

출고기한

영업일 5일 이내 출고

배송비

기본 4,000원 / 10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


0원

구매시 주의 하세요


· 그림액자 상품은 고객의 주문에 따라 제작되는 맞춤제작 상품으로 제작이 시작된 이후에는 변심에 의한 취소, 교환/환불이 불가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액자 크기 및 지역에 따라 일반적인 택배가 아닌 전용 화물 등으로 과도하게 높은 배송비용이 발생하는 경우 결제금액 외 별도의 추가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네이버페이 구매시 쇼핑몰 적립포인트는 중복 지급되지 않습니다.

· 네이버페이 주문취소 신청 시 제작이 시작된 경우 주문제작상품 특성상 취소 승인 및 반품 자동 수거지시가 불가능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프레임리스, 아크릴띄움(화이트/우드/블랙) 프레임은 아크릴 압착 액자로 전면에 보호필름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수령후 그림면의 보호필름을 제거해주세요.

· 수제작 특성상 동일 사이즈라도 mm단위 차이가 있습니다. 정사이즈 제작이 필요한 경우 주문시 고객센터로 연락 또는 주문시 메세지를 남겨주세요.

아트앤샵 고객만족지수

96.8%

( 전체후기평점 4.8 )

  • (매우만족)

     

    84.6%
  • (만족)

     

    12.2%
  • (보통)

     

    2.4%
  • (불만족)

     

    0.6%
  • (매우불만)

     

    0.1%

다른 그림 보기아티스트 그림 전체

그림과 프레임의 조합 예시로 프레임의 무늬가 그림 비율에 따라 변형돼 보일 수 있습니다. 상품기술서의 프레임 설명을 참고하세요.

아비뇽의 처녀들

Les Demoiselles d Avignon


파블로 피카소

스페인 말라가에서 출생하였고 주로 프랑스에서 미술활동을 한 20세기의 대표적 큐비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대표작으로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등이 있다. 피카소는 1만 3,500여 점의 그림과 700여 점의 조각품을 창작했다. 그의 작품 수를 전부 합치면 3만여 점이 된다. 피카소 작품의 개수와 다양성 때문에 많은 예술사가들이 그의 작품들을 시기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시도해왔다. 하지만 각 시기의 명칭을 정하고 시기를 몇 개로 나눌 것 인가를 놓고 계속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 1904년 피카소는 이른바 '장밋빛 시대'를 맞는다. 이 시기의 작품들 역시 피카소가 파리에 머물 때 그려졌지만, 오늘날 그것들은 그의 초기 작품들과는 달리 스페인 화풍이 아니라 프랑스 화풍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2년의 기간 동안 피카소는 전과는 달리 붉은 색과 분홍 색을 많이 사용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그가 많은 그림들의 주제로 삼았던 페르낭드 올리비에와의 로맨스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피카소는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였지만, 프랑스 정부에서 사회주의자로 분류되어 프랑스 시민권을 갖지는 못했다. 피카소는 스탈린을 익살스럽게 그린 그림이 스탈린에 대한 조롱으로 해석되어 1957년에 제명되기까지 프랑스 공산당원으로 활동한 사회주의자였으며, 한국 전쟁에서 벌어진 미국의 잔학행위(예:미군이 충청북도 영동군 노근리에서 한국인들을 전투기와 기관총으로 학살한 노근리 학살)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1951년 그는 '한국의 학살'(Massacre in Korea)을 발표하였고, 유엔과 미국의 한국전쟁의 개입을 반대하였다. 1973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