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으로 지은 집의 작가 서도호, 13년 만에 국립현대미술관에 돌아오다

천으로 지은 집의 작가 서도호, 13년 만에 국립현대미술관에 돌아오다

반투명한 천으로 집을 통째로 지어 온 설치미술가 서도호(1962년생)의 대규모 개인전 '서도호'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 초기작부터 2026년 신작,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까지 500여 점이 나왔고, 내년 2월 9일까지 이어집니다. 2013년 서울관 개관 특별전 이후 13년 만의 귀환인데, 작가는 이 전시를 '회고전'이 아니라 '회향'이라고 부릅니다. 무엇을 보면 좋을지 정리했습니다.

'집'을 짓는 작가, 서도호는 누구인가

서도호는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공부했고, 미국 로드아일랜드스쿨오브디자인(RISD)에서 회화를, 예일대에서 조각을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합니다. 서울, 뉴욕, 베를린, 런던처럼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살아온 경험이 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합니다.

그를 세계에 알린 것은 '천으로 지은 집'입니다. 어린 시절 살던 서울 성북동 한옥을 옥색 한복천으로 실물 크기 그대로 바느질해 로스앤젤레스에 걸었던 〈서울집/L.A.집〉(1999)이 출발점으로 꼽힙니다. 문손잡이, 전기 스위치, 계단 난간까지 천으로 옮겨 낸 이 반투명한 집들은 접어서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있습니다. 이사하는 사람이 집을 통째로 들고 다니는 셈이지요. 이주와 거주, 개인과 공동체, 공간과 기억이 그의 오랜 질문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과의 인연도 깊습니다. 2013년 서울관이 문을 열 때 미국 프로비던스의 3층 주택 안에 한옥을 겹쳐 넣은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을 선보였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로부터 13년 만에 같은 미술관에서 여는 대규모 개인전입니다.

회고전이 아니라 '회향'인 이유

작가는 개막 기자간담회에서 이 전시를 회고전으로 부르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쌓은 것을 남에게 돌려 나누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불교의 '회향'에 가깝다는 설명입니다. 30년 가까이 해외에서 작업하며 쌓은 것을 한국 관객에게 나누고 싶다는 뜻도 담겼습니다.

그래서 구성이 독특합니다. 해외 대형 전시에서 이미 보여 준 대표작을 되풀이하기보다 국내외에 공개되지 않은 작품과 드로잉을 많이 넣었고, 한국적 맥락을 드러내는 데 힘을 줬습니다. 유치원 시절 그림까지 나와, 작가 스스로 '옷을 홀랑 벗은 느낌'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놓치면 아쉬운 작품들

전시는 미술관 복도에 차린 '씨드 뱅크(Seed Bank)'에서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 그림을 모은 곳으로, 작가는 여기에 30년 작업의 씨앗이 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위대한 대표작보다 아이의 낙서로 전시를 여는 선택 자체가 '회향'이라는 제목과 닮았습니다.

〈러빙/러빙: 서울 집〉(2013~2022)은 어린 시절 살았던 한옥의 표면을 종이에 대고 흑연으로 문질러 떠낸 작업입니다. 탁본처럼 집의 결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운송용 상자 54개 분량에 이르는 규모입니다. 천으로 집을 재현하던 방식이 종이와 흑연으로 바뀌면서, 집의 기억이 '손으로 만진 흔적'으로 남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둥지/들〉(2024)은 작가가 살았던 여러 도시의 집에서 복도·현관·계단 같은 '건너가는 공간'만 가져와 하나의 건축으로 이어 붙인 대형 설치입니다. 폴리에스터 천과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이 반투명한 통로를 관객이 직접 걸어 지나갈 수 있어, 전시에서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밖에 실로 그린 드로잉 200여 점, 집이 사람을 뒤쫓는 장면을 수제 종이에 실로 표현한 〈쫓아오는 집〉(2019), 런던·호셤·뉴욕·베를린·프로비던스·서울의 집을 한데 겹친 〈완벽한 집〉(2024), 뉴욕 아파트의 복도와 계단을 옮긴 작업 등이 나옵니다. 실 드로잉은 2009년 싱가포르 STPI 레지던시에서 권유를 받아 시작했다고 합니다.

관객이 자기 집을 떠올리게 되는 전시

서도호의 집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는 그것이 작가 개인의 집인 동시에 보는 사람의 집이 되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문손잡이와 스위치, 조명을 하나하나 구현하는 까닭을 일상에서 매일 반복해 만지는 물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관객들이 작품 앞에서 자기 집과 지나온 삶을 돌아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합니다.

최근작에는 아버지로서 아이를 키우며 느낀 마음도 담겼고, 작가는 벽과 경계가 없는 집을 꿈꾼다고 말합니다. 옷을 '몸을 감싸는 가장 작고 은밀하며 이동 가능한 공간'으로 보는 시선, 그리고 난민을 위한 쉼터를 현실에서 어떻게 풀지 고민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면 그의 '집'이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지금 세상을 향한 질문이라는 점이 보입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가 서도호의 작업을 한국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관람 정보와 다음 여정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2027년 2월 9일까지 열립니다. 관람료는 성인 8,000원이며, 1시간 단위 회차 예약제로 운영됩니다. 미술관 누리집에서 예매하면 할인과 모바일 입장권 혜택이 있습니다. 수요일과 토요일은 밤 9시까지 문을 열어 퇴근 뒤 들르기 좋습니다. 배우 박보검이 오디오 가이드 목소리를 재능 기부한 것도 화제입니다.

서울 전시가 끝나면 일본 도쿄도현대미술관과 홍콩 M+로 순회할 예정입니다. 한국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이 아시아 주요 미술관을 차례로 도는 셈이라, 서울에서 먼저 그 출발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의미가 있습니다. 반투명한 천 사이를 걸으며, 내가 살아온 집들은 어떤 모습으로 내 안에 남아 있는지 떠올려 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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