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숨어 있던 모네의 〈붓꽃〉, 742억 원에 팔리다: 프랑스 경매 최고가

70년 숨어 있던 모네의 〈붓꽃〉, 742억 원에 팔리다: 프랑스 경매 최고가

클로드 모네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지베르니에서 그린 대작 〈붓꽃〉이 10월 22일 소더비 파리 경매에서 수수료 포함 5,000만 유로(약 742억 원)에 팔렸습니다. 프랑스에서 열린 미술품 경매 가운데 가장 높은 값입니다. 70년 가까이 파리의 한 저택 안에만 걸려 있어 흑백 사진으로만 알려졌던 그림이, 모네 서거 100주년을 맞은 해에 처음 세상에 나와 아시아의 개인 수집가에게 돌아갔습니다.

45분 동안 6명이 다툰 그림

경매는 10월 22일 저녁 파리 소더비에서 열렸습니다. 경매사가 내놓은 추정가는 2,200만~3,000만 유로였는데, 여섯 명의 응찰자가 45분 가까이 값을 올리면서 최종 낙찰가는 수수료를 포함해 5,000만 유로, 미국 달러로 약 5,600만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추정가의 낮은 쪽보다 두 배 넘게 오른 셈입니다.

그림을 가져간 사람은 이름이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소더비 아시아의 부회장 젠 화(Jen Hua)를 통해 전화로 응찰한 아시아의 개인 수집가라는 사실만 알려졌습니다. 이번 낙찰로 2010년 크리스티 파리에서 모딜리아니의 조각이 세운 4,320만 유로가 16년 만에 깨졌습니다. 다만 물가 상승을 따지면 1989년 파리 드루오 경매장에서 팔린 피카소의 〈피에레트의 결혼〉이 여전히 더 비싸다는 분석도 함께 나왔습니다.

흑백 사진으로만 알려졌던 대작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모네 〈붓꽃〉(1914~17년경). 이번에 팔린 그림과는 다른 작품으로, 같은 시기 지베르니 정원의 붓꽃을 그렸다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모네 〈붓꽃〉(1914~17년경). 이번에 팔린 그림과는 다른 작품으로, 같은 시기 지베르니 정원의 붓꽃을 그렸다

〈붓꽃〉은 모네가 1924년에서 1925년 사이, 지베르니 집 정원에서 그린 유화입니다. 세로 약 1.6m, 가로 약 1.8m로 말년 10년 동안 그린 그림 가운데서도 큰 편에 속합니다. 붓꽃 잎과 꽃잎이 형태를 거의 잃고 색과 붓질로 풀어져 있어, 모네 말년의 추상에 가까운 화풍을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 꼽힙니다. 한 번도 손상되거나 바니시(겉칠)를 입힌 적이 없다는 점도 소더비가 강조한 부분입니다.

이 그림이 그토록 오래 숨어 있던 이유는 소장 내력에 있습니다. 모네가 죽은 뒤 지베르니 작업실의 그림들은 아들 미셸 모네에게 넘어갔고, 1956년 화상 카티아 그라노프가 이 가운데 일부를 사들였습니다. 그라노프는 오랜 고객이던 잔 슐룸베르제(1889~1983)에게 먼저 고를 기회를 줬고, 그가 고른 그림이 바로 〈붓꽃〉이었습니다. 잔 슐룸베르제는 세계적 석유 서비스 기업 슐룸베르제(지금의 SLB)를 세운 마르셀 슐룸베르제의 부인입니다. 그 뒤 그림은 파리의 가족 저택을 한 번도 떠나지 않았고, 미술사 연구자들에게도 흑백 사진 한 장으로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일반 관람객이 실물을 처음 본 것은 올해 9월 소더비 파리의 경매 전 전시에서였습니다.

한때 '눈먼 화가의 그림'이라 불린 말년작

지금은 수백억 원에 팔리는 모네의 말년 그림이 처음부터 환영받은 것은 아닙니다. 모네가 세상을 떠난 뒤 이 시기 대작들이 공개됐을 때, 일부 비평가들은 형태가 무너진 화면을 두고 '예술적 자살'이라거나 '눈먼 노인의 그림'이라고 깎아내렸습니다. 실제로 모네는 말년에 백내장으로 시력이 크게 나빠진 상태에서 작업했습니다.

평가가 뒤집힌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입니다. 형태보다 색과 붓질 자체가 화면을 이끄는 이 그림들은 잭슨 폴록이나 마크 로스코 같은 추상화가들보다 앞서 간 '최초의 추상화 가운데 하나'로 다시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붓꽃〉의 낙찰가는 그런 재평가가 시장에서도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참고로 모네 작품의 세계 경매 최고가는 2019년 소더비 뉴욕에서 1억 1,070만 달러에 팔린 〈건초더미〉(1890)로, 이번 기록은 '프랑스 안에서'의 최고가입니다.

같은 날 빠진 세잔 세 점

이날 슐룸베르제 소장품 경매에는 〈붓꽃〉 말고도 모네의 〈수양버들〉(1918~19), 귀스타브 모로, 카미유 클로델 등의 작품이 함께 나왔고, 출품된 27점이 모두 팔려 총 7,440만 유로를 기록했습니다. 소더비 파리의 순수미술 경매 가운데 가장 큰 실적입니다.

눈길을 끈 일도 있었습니다. 프랑스 정부가 '국보'로 지정한 폴 세잔의 그림 세 점이 경매 몇 시간 전에 갑자기 빠진 것입니다. 소더비는 이 그림들을 세잔의 고향 엑상프로방스로 돌려보내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고, 엑상프로방스시가 프랑스 문화부의 지원을 받아 사들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프랑스는 국보로 지정한 미술품이 해외로 나가기 전에 국가가 먼저 사들일 기회를 갖는 제도를 두고 있는데, 이번 모네 작품들에는 그런 제한이 없어 아시아 수집가에게 팔릴 수 있었습니다. 같은 날 크리스티 파리 경매에서도 모네의 〈푸르빌 절벽 가장자리〉가 1,270만 유로에 팔리는 등 모네의 이름이 파리 경매장을 휩쓴 하루였습니다.

모네 서거 100주년, 왜 지금 주목받나

모네는 1926년 12월 5일 지베르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올해가 꼭 100주년이라 파리에서는 모네를 다시 보는 전시가 잇달아 열리고 있고, 오랫동안 개인 저택에 있던 그림이 이 시기에 처음 공개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도 모네는 전시가 열릴 때마다 줄이 길게 늘어서는 화가입니다. 이번 일은 그런 모네의 말년 대작이 여전히 개인 소장품 속에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그림의 새 주인이 아시아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새 소장자가 언젠가 이 그림을 미술관에 빌려준다면, 흑백 사진으로만 알려졌던 〈붓꽃〉의 보랏빛을 아시아에서 직접 볼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참고 자료

대표 이미지 : 지베르니의 화가의 정원 (Le jardin de l'artiste à Giverny, 1900) · Claude Monet (Musée d'Orsay) · Public Domain · 출처 · 라이선스

본문 이미지 1 : 붓꽃 (Irises, 1914~17년경) · Claude Monet · 사진 Sailko · CC BY 3.0 · 출처 ·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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