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의 〈만종〉, 기도하는 두 농부 발밑에 무엇이 묻혀 있었나

밀레의 〈만종〉, 기도하는 두 농부 발밑에 무엇이 묻혀 있었나

해 질 녘 들판, 멀리서 교회 종이 울리자 감자를 캐던 부부가 일손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은 한국에서도 교과서와 달력으로 익숙한 그림이다. 그런데 이 조용한 그림은 한때 프랑스와 미국이 경매장에서 맞붙은 그림이었고, 살바도르 달리는 여기서 죽은 아이의 관을 봤다고 주장했다. 화가의 가족이 그림값이 오른 덕을 보지 못한 일은 오늘날 한국 미술계의 '추급권' 논의로까지 이어진다. 가을 저녁에 다시 보는 〈만종〉의 뒷이야기다.

할머니의 기억에서 시작된 그림

〈만종〉은 밀레가 1857년부터 1859년 사이에 그린 유화로, 크기는 가로 66cm, 세로 55.5cm 정도다. 거실 벽에 걸 만한 크기로, 생각보다 작다. 원래 제목은 '감자 수확을 위한 기도'였다고 전한다. 미국 보스턴의 수집가 토머스 골드 애플턴이 주문했지만 그림을 가져가지 않았고, 밀레는 뒤에 지평선에 교회 첨탑을 그려 넣고 제목을 '안젤루스(L'Angélus)'로 바꿨다.

안젤루스는 하루 세 번 교회 종이 울릴 때 올리는 가톨릭 기도다. 밀레는 어릴 적 들에서 일하다 종소리가 들리면 할머니가 꼭 일을 멈추게 하고 함께 기도했다고 회상했다. 그림 속 배경은 파리 남쪽 바르비종 들판이고, 멀리 보이는 첨탑은 이웃 마을 샤이앙비에르의 교회로 알려져 있다.

땅바닥에 놓인 쇠스랑과 바구니, 감자 자루를 실은 손수레, 노을빛에 어두워진 두 사람의 윤곽. 넓은 들판에 두 사람만 서 있어서 평범한 농부가 기념비처럼 커 보인다. 종교화라기보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고요한 순간을 그린 그림으로 읽히는 이유다.

1,000프랑에서 75만 프랑까지, 경매장의 애국 전쟁

오르세 미술관이 정리한 소장 이력을 보면 이 그림은 1860년 1,000프랑에 처음 팔렸다. 이후 여러 수집가의 손을 거치면서 값이 크게 올랐다. 1881년 경매에서는 수수료를 합쳐 16만 8,000프랑에 사업가 외젠 세크레탕에게 넘어갔다.

전설 같은 장면은 1889년 7월 1일 세크레탕 소장품 경매에서 나왔다. 프랑스 측에서는 루브르를 대신해 앙토냉 프루스트가 나섰고, 미국 측에서는 뉴욕의 아메리칸 아트 어소시에이션이 경쟁했다. 미국 쪽 제임스 F. 서턴이 값을 55만 3,000프랑까지 올리며 그림을 가져갔다. 프랑스의 국민 그림이 미국으로 간다는 소식에 프랑스 여론은 크게 들끓었다.

그림은 미국을 돌며 전시된 뒤 이듬해인 1890년 프랑스 백화점 사업가 알프레드 쇼샤르가 75만 프랑에 사들여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쇼샤르는 이 그림을 국가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겼고, 1909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1910년 1월 루브르에 들어갔다. 1986년부터는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 있다. 1932년에는 한 남성이 그림을 칼로 긋는 일도 있었지만, 복원을 거쳐 지금도 오르세의 대표작으로 남아 있다.

달리가 본 것: 기도인가, 장례인가

〈만종〉을 가장 집요하게 파고든 사람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였다. 달리는 어릴 때부터 이 그림 복제화를 보며 이상한 불안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두 사람의 자세가 기도라기보다 슬픔에 가깝다고 보고, 이들이 땅에 묻은 아이를 애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930년대에는 〈만종〉을 바탕으로 한 그림을 여러 점 그렸고, 1938년에는 이 그림 하나를 다룬 책 '밀레 〈만종〉의 비극적 신화'를 썼다.

달리는 루브르에 엑스레이 촬영을 요청했다. 그 엑스레이 사진은 그의 책에 실렸는데, 두 사람 발치에 길쭉한 기하학적 형태가 어둡게 비친다. 달리는 이것이 작은 관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술사학계에서 이 해석은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화가가 처음 구상을 바꾸며 덧칠한 흔적일 수도 있고, 바구니 같은 다른 물건의 흔적일 수도 있어서, 무엇인지 단정할 근거가 없다.

그래도 이 이야기가 오래 회자되는 것은 그림을 다시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개 숙인 여인의 손 모양, 모자를 쥔 남자의 굳은 자세, 땅에 놓인 바구니. 관이 있든 없든 〈만종〉은 그저 '평화로운 시골 풍경'만은 아니라는 것을 달리가 보여 준 셈이다.

그림값은 올랐는데 화가 가족은 왜 가난했나

밀레 〈이삭 줍기〉(1857), 오르세 미술관. 1889년 〈만종〉 경매 뒤 이 그림도 30만 프랑에 팔렸다.

밀레 〈이삭 줍기〉(1857), 오르세 미술관. 1889년 〈만종〉 경매 뒤 이 그림도 30만 프랑에 팔렸다.

밀레는 1875년 세상을 떠났다. 〈만종〉이 55만 프랑, 75만 프랑에 거래될 때 그 돈은 그림을 사고판 수집가와 상인의 몫이었고 화가의 가족에게는 한 푼도 돌아가지 않았다. 1889년 경매 뒤에는 밀레의 또 다른 대표작 〈이삭 줍기〉도 30만 프랑에 팔렸다. 치솟는 그림값과 밀레 가족의 형편이 너무 달랐던 일은 프랑스에서 '추급권(droit de suite)'이 생기는 계기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작품이 다시 팔릴 때마다 작가나 유족이 판매가의 일부를 받는 권리로, 프랑스는 1920년에 이 제도를 처음 법으로 만들었다.

이 이야기는 한국과도 이어진다. 2024년 7월 시행된 미술진흥법에는 '재판매보상청구권', 곧 추급권 조항이 들어 있고, 이 조항은 2027년 7월 26일부터 시행된다. 작가가 살아 있는 동안과 세상을 떠난 뒤 30년 동안, 작품이 경매나 화랑을 통해 다시 팔리면 일정 비율의 보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 화랑업계에서는 시장이 움츠러들 수 있다는 걱정도 나와서, 시행을 앞두고 국내 미술계에서 〈만종〉 이야기가 자주 다시 나온다.

저녁 종소리에 일손을 멈춘 두 농부의 그림이 160여 년 동안 경매 기록, 초현실주의자의 집착, 작가의 권리 문제까지 끌어안게 됐다. 다음에 〈만종〉을 보면 발밑의 바구니와 지평선의 첨탑, 그리고 그림 밖에서 오간 숫자들도 함께 떠올려 보자.

참고 자료

대표 이미지 : 만종 (L'Angélus), 1857~1859 · Jean-François Millet · Musée d'Orsay · Public Domain · 출처 · 라이선스

본문 이미지 1 : 이삭 줍기 (Des glaneuses), 1857 · Jean-François Millet · Musée d'Orsay · Public Domain · 출처 ·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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